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한 한문 해설서.
<훈민정음예의본>과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지정종목 국보
지정번호 국보 제 70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소장 간송미술관(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시대 조선
종류 목판본
‘세종대왕은 단지 동양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이바지한 왕이다. 훌륭한 일을 많이 했지만 한글(즉 훈민정음) 창제는 그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다.’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이자 한국어 학자였던 J.S. 게일이 선언문에 있던 말로 한글이 왜 세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든 사람’과 ‘만든 목적’이 분명한 언어이다. 더군다나 재위 기간에 백성을 위해 언어를 만든 왕은 세종대왕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것만이 아니라 기득권에 대한 문자로서의 실용성을 실험한 ‘절대 지식에 대한 혁명’이었다. 양반이 아닌 모든 백성이 자신의 말과 생각을 표현하며 억울함이 없이 살아가기를, 세종대왕은 그토록 원했다. ‘애민사상’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문맹률이 매우 낮은 국가 중에 속한다. 바로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문맹 퇴치에 앞장서는 유네스코는 그런 이유로 1997년 훈민정음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했다. 당시 한자가 아닌 한글로 백성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고, 살기 편하게 해주고 싶었던 세종 대왕에 상소문을 올리며 극심하게 반대하던 유학자들의 가장 큰 걱정은 한자를 쓰지 않으면 백성들이 중국에 대한 의식과 예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양반이 아닌 백성이 글을 알게 되었을 때 기득권자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평등해진다는 사실이었다. ‘한글’은 ‘평등’이었다.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글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세종대왕의 뜻이었다. 그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대한 불합리성을 경계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까지 조정에 등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끝까지 격렬하게 논쟁하며 만든 것이 바로 ‘훈민정음’인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은 목판본 2권 2책이다.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세종대왕이 한국말의 음운체계를 반영하는 문자를 창제하여 한국인은 그 위치와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온전하게 적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두 글자를 아주 쉽고 용이하게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단 28자의 문자는 그 획이 단순하기 때문에 문자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나 신문고(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 줄 목적으로 만든 시설)는 모두 백성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소통은 결국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세종대왕 방식의 사랑이었다. ‘애민사상’!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한다.’ 한문의 복잡함과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하고 싶은 말과 억울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창제하였기에 지금 우리는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울고, 방탄소년단이 세상에서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K-PAPER는 그 아름다운 우리나라 말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카드도 만들게 된 것이니, 한글이 없었으면 모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